단 하나의 소재로 20세기를 정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단추부터 카메라, 공기주입식 의자, 샌드위치 포장지까지 수많은 모습을 하고 있다. '플라스틱'이라는 단어는 틀 혹은 형태를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에서 유래한다. 오늘날 가장 인정받는 플라스틱의 속성은 어떤 형태와 밀도, 힘, 유연성, 고온 환경에도 알맞은 플라스틱 종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인간의 상상에 형태를 부여하며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다음 세대를 형성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현제의 플라스틱 산업은 1844년 찰스 굿이어가 천연고무를 황가 섞고 열과 압력으로 경화시켜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을 특허 냈을 때 시작되었다. 굿이어는 이 방법에 '가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세기 초에 이르렀을 때에는 베이클라이트, 카탈린, 셀룰로이드와 같은 수많은 플라스틱 신소재가 개발되고 특허 등록되었다. 이런 플라스틱으로 본래 진주층이나 뿔, 상아와 같은 값비싼 천연소재로 만들었던 손잡이, 드레스 액세서리를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의 플라스틱은 모조품과 저가 대량생산과 연관되곤 했다.
플라스틱의 황금기는 양차대전 사이에 있었던 첫 번째 대량 전화 파동의 시기와 일치한다. 라디오부터 헤어드라이기, 주방용품, 선풍기까지 온갖 전자 제품이 플락스틱으로 만들어졌다. 플라스틱은 20세기 중반부터 급격히 성장한 통신산업이 선택한 매체이기도 했다. 수화기뿐 아니라 케이블피복 등 네트워크 기반 자체가 플라스틱으로 이뤄졌다. 소비재를 만드는 제조사들에게 크게 어필한 플라스특은 공업과 군사 산업에도 다양하게 응용됐다. 단순하게는 포장재의 형태로 식품 산업에 혁명을 이르켰고, 매우 정교한 외양으로 우주개발 경쟁과 의학 진보에도 기여했다. 가단성 있는 플라스틱으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고, 어떤 모양이나 크기로도 주조할 수 있었다. 1972년,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플라스틱을 두고 편재성이 형태를 얻은 것이며, 어떤 움직임이 남긴 흔적이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로스 러브그로브가 만든 티난트 물병은 바로트의 말뜻을 완벽하게 포착한다. 티난트 물병에서 보이는 것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마치 흐르던 물이 얼어버린 듯한 형태다.
화석연로로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만들다보니 유한하며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비축유의 문제가 생겼다. 오늘날엔 바이오 오수지 등 석유 기반 합성물의 대체물을 찾기 위한 철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디자이너와 제조사도 플라스틱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나 하이브리드 소재를 찾고 있다. 석유 기반 제품에 열광하는 우리가 갈 길을 아직 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게 분리해서 재활용할 수 있거나 좀더 알뜰하게 쓸 수 있는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큰 것이다.
바스프 같이 플라스틱 신소재를 개발하는 대형 화학회사는 자사 제품의 생태발자국을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플라스틱이 비록 매우 흔하지만 수명이 짧고 일회용잉라는 대중의 기대를 타파하기 위해 보다 내재적이고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제품을 디자인함으로써 플라스틱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를 바꾸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실로 스튜디오의 폴리스티렌 연구의 밑바탕에는 플라스틱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다. 폴리스티렌은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손꼽힌다. 폴리스티렌으로 주조한 일회용 커트러리와 식기는 포장용 펠릿의 성형블록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다. 메우 가볍고 튼튼하지만 부서지기도 쉬운 폴리스티렌은 수명이 매우 짧고 일회용이라고 평가된다. 폴리스티렌은 열가소성이다. 실로 스튜디오는 증기실을 사용하는 고유 기법을 써서 직물 틀에서 펠릿을 주조했다.
폴리스티렌 펠릿을 가열하면 펠릿이 부풀고 서로 달라붙는다. 하지만 직물 틀에서 압축하면 부피가 늘어나지 않아 단단하고 촘촘하며 기존 폴리스티렌과는 상당히 다른 폴리스티렌을 얻을 수 있다. 실로 스튜디오는 새롭게 발견한 폴리스티렌의 내구성을 실험해서 가구를 제작했다. 폴리스티렌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정면으로 맞서고 소재를 재평가하는 시도였다.
탄소섬유는 폴리스티렌처럼 매우 가볍다. 다른 점이라면 탄소섬유는 가격이 비싸고 매우 강하다. 탄소섬유의 강성은 중합체 안에 고정되어 있는 탄소필라멘트로부터 생긴다. 탄소섬유는 보통 포뮬러 원 자동차나 항공우주 산업처럼 강도 대 중량비가 높은 곳에 쓰인다. 같은 이유로 스포츠용품과 전자제품, 전문용품의 다지안에도 자주 활용된다. 가구용으로 쓰기엔 확실히 지나치게 특수한 소재이지만 론 아라드, 마크 뉴슨, 반 시게루와 같은 디자이너들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탄소섬유를 소재로 한 디자인을 발표했다. 2008년, 테렌스 우드게이트는 포뮬러 원 다지이너 존 바너드와 함께 디자인한 에스타블리쉬드 앤 선즈를 위한 서피즈 테이블을 선보였다. 탄소섬유로 테이블 윗면은 2밀리미터 두께로 3미터까지 늘어났다. 브라질의 그렌딘 사는 1971년부터 플라스틱 신발을 만들어왔다. 그렌딘은 1979년 멜리사라는 디자인 신발류 및 액세서리 브랜드를 만들었다. 맬플렉스라는 특허 등록된 무독성 PVC로 만든 멜리사 신발은 부드럽고 편안하면서도 견고하고 튼튼하다. 멜리사 브랜드는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초빙하는데 자하 하디드, 캄파나 브라더스, 카림 라시드 등 주로 패션업계를 제외한 분야의 다지인의 힘을 빌린다. 소재로서 플라스틱을 십분 활용하는 이들의 제품은 제조기법의 영역을 더욱 확장 시킨다.
-출처-
한 시대의 문화적 상징, 디자인 아이콘 <개러스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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